디자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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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뒷북이라 더 반갑네요. ^^ 역사는 디자인된다 이제야 가입했네요...대박뒷북!! 역사는 디자인된다 디자인노동조합관련하여 검색하다 들어왔는데 글이 8년전에 멈춰있네요. 궁금한게 많습니다. 현재 8년이 지난 지금.. 조금이나마 추진된 부분이 있는지요. 디자이너들 모임을 소소히 꾸려 가고있는데 정보를 얻고싶어 글을 남깁니다. 디자이너 노동조합? 기업도 사회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텐데 왜 사회적 기업이 따로있나요? 글에 맥락이 없어서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사회적 디자인'을 외치는 디자이너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아름다운 성찰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문화 전공이 아닌 일을 시작할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제가 생각하는 그래픽 디자인인 분야가 있었어요. 하지만 일을 하면서 제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님을 느끼게 되었죠. 그래도 경험을 쌓아가다보면 나중에 분명 커리어도 쌓이고 원하는 디자인을 뽐낼 날이 오리라 생각이 듭니다. 편집디자인=광고디자인? 그래픽?시각? 그리고 디자인 진로 고민. '디자인+아트=아름다움'이 됩니다. 결국 모두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한 활동인셈이죠. 상업적 예술을 디자인으로 봐야합니까? 디자인과 아트를 구분하려는 시도가 많은 와중에 디자인과 아트를 합치면 무엇이 되는가 궁금해지네요. 상업적 예술을 디자인으로 봐야합니까? 감사합니다. ^^ 역사는 디자인된다 노력의 결실을 축하드리고,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좋은 책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는 디자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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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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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디자이너 _ <디자인 평론> 1호, 이지원 윤여경의 더블넥서스

 

윤여경은 여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는 중년의 남자다. 머리는 반쯤 벗어졌고 체구는 땅달막하다. 그를 간접적으로 알다가 처음으로 대면한 사람은 적잖은 충격에 빠진다. 늘 있는 일이다 보니 그는 이런 반응이 불편하거나 섭섭하지 않다. 그가 신문사에 입사해 자기소개를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아연실색이었다. 신입 디자이너 윤여경. 키는 170. 보도국 사람들이 기대했던 늘씬한 미녀 디자이너는 없었다.

 

시각디자인학과 교실 문을 열어 보면 여학생 숫자가 압도적이다. 이 말은 곧 그래픽 디자이너로 산업 사회에 배출되는 인력 중에 여성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래픽 디자인 업계는 여초 사회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마 한국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기업의 디자인부서에 소속된 디자이너를 모두 살핀다면 여성의 숫자가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디자인 사회에 활동이 알려지는 디자이너는 남성이 대다수다. 최근에 벌어지는 디자인 관련 소식지와 발표회에 등장하는 면면이 이를 반영한다. 〈더티&강쇼〉의 일 년치 초대작가는 남성이 13명인데 비해 여성 디자이너는 북 디자이너 김다희 단 한 명 뿐이다. 〈Typography Seoul〉의 'creator'섹션에 소개된 그래픽 디자인 관련 창작자는 남 97, 여 26 비율이고(그룹, 외국인, 중복 제외), 작년에 열린 국민대학교 조형콘퍼런스의 연사는 남 21, 여 5의 비율을 이뤘다. 물론, 이러한 성비는 급격히 변화하는 추세다. 외국의 디자인 콘퍼런스나 어워드를 살펴보면 젊은 여성의 수는 지금껏 꾸준히 늘었고, 최근엔 남녀 숫자 비교가 무색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의 이미지는 남성이 지배적이다. 왜일까?

 

디자인 전문가: 남성성

 

디자인 사회에서 여성의 수적 열세는 해가 지남에 따라 역전될 것이 뻔하다. 최근 배출된 디자이너의 남녀 성비가 그러하거니와, 이미 디자인 부서에서는 요직에 여성을 배치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궁금한 것은 이러한 수치적 비율이 따위가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늘어나는 여성 디자이너가 과연 여성의 본성이자 장점인 여성성을 발휘하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모든 그래픽 디자이너가 여성이라 한들, 그들이 지난 100년과 다를 바 없이 남성적 디자인을 고스란히 계승한다면, 성비의 변화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전제를 염두하고 다시 생각해보자. 비즈니스 사회에서 디자인은 어떤 활동인가? 디자인은 사업가의 활동을 돕는 용역활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어떤 사업가가 '디자인은 인류와 문화를 위한 중요한 행위이므로 본인은 디자이너의 활동을 아무 댓가 없이 적극 후원하겠다'고 말했다면 그 말은 거짓말이거나 개수작이거나 둘 중 하나다.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현장에서 디자인은 단 하나의 분명한 목적을 띈다. 더 많이 소비하게 할 것.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 행세를 한다. 문제와 해결. 목적중심 사고. 합리와 효율. 단일성과 명확성. 그렇다. 디자인은 남성성을 요구하는 분야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즈니스가 필요로하는 디자인에 한정된 얘기다. 그런데 잠깐. 사업가 클라이언트가 없는 디자인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디자인 전문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아가는 중에 발생하는 여러 돌발상황을 문제로 인식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포토그래퍼가 보낸 이미지는 쓸 수가 없겠어. 기획 의도를 다시 전달해서 재촬영하고 클라이언트에게는 발행일을 조금 늦추자고 하자 ' 이때 디자이너는 근본적 문제(최대한 많이 팔기)를 해결하기 위해 부수적 문제(포토그래퍼의 방종)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예산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풀어가는 전문가다. 목표를 향한 길 밖에 있는 것은 모두 방해요소다. 심지어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포토그래퍼를 해고하기도 서슴치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기)

 

과거에는 어땠을까.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 즉, 디자인 전문가가 존재하는 디자인의 발생은 20세기 초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발터 그로피우스는 1919년 바우하우스라는 학교에서 예술과 공예와 산업활동을 포괄하는 융합 분야를 만들었고, 그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디자인 교육으로 자리잡았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은 철저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띄었다. 예술의 작가적 성격을 떨쳐버리고 시장과 산업에서 통용되는 예술, 공예 교육을 추진한 초기의 교육 방침은 향후 70년 간 전 세계 디자인 교육을 규정했다. 바우하우스는 처음부터 공예학교를 모태로 삼은 탓에 여학생이 많았다. (그릇이나 바구니는 여자가 만들던 시절 얘기다.) 하지만 여학생은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 바우하우스 교수진은 남자는 건축과 디자인, 여자는 공예라고 생각했다. 모던 디자인은 남성성이 중요시되는 활동이었다.

 

디자인 모더니즘은 남성의 시대에 남성이 만든 남성의 사상이다. 심지어 'modern man'이라는 호칭을 자랑스러워할 정도였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집결하는 자세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1900년대 초 디자인 모더니즘, 나아가 산업화 된 사회에서 여성적 성향은 기피해야 할 자세였다. 누구는 세계제국을 건설하려 하고, 누구는 혁명을 일으켜 계급을 뒤집으려는 판에 나약하고 머뭇거리는 여성적 관점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80년대 이후 상황이 변했다. 요즘 디자이너는 헬베티카의 허무맹랑한 권위를 무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나마 사회에서 약발이 먹히는 고딕체와 명조체의 권위를 등에 업고 전문가 행세를 하려고 애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리 세대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어떠한 존중도 받아본 경험이 없다. 설상가상 중학생도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 시대에 디자이너의 기술적 전문성은 온데간데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디자이너끼리 알고 있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기를 기대한다. (그 정답이 윤고딕과 sm명조라고 믿는 가망없는 디자이너도 있다.) 정답을 손에 쥐고 모더니스트 선배들이 누렸던 직업적 존중을 얻고자 한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집단이므로 너희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존중하고 보살필지어다. 중성자 총을 든 고스트버스터즈가 생각난다. 최소한 고스트버스터즈는 없는 유령을 만들어내진 않았지.

 

디자인 전문가 외 나머지: 여성성

 

나는 학생들에게 '여성적이라는게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다. 학생들이 거침없이 솔직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놀랐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적이란 직접적이지 않고 은유적임을 의미합니다."

"여성적이란 정해진 목표가 아닌 과정을 중요시하는 성향입니다."

"여성적이란 복합적이고 직관적인 것입니다."

"여성적이란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입니다."

 

—Véronique Vienne, 〈그래픽 환상〉(Graphis, 2002)

 

디자인은 문제해결이라는 남성적 관점의 문제는 애초에 그래픽에 문제같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앞서 밝힌 대로 디자인 전문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란 것은 비즈니스 세계의 문제이거나(마케팅 수단), 혹은, 없는 문제를 애써 지어낸 경우가 고작이다(사용자 경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비즈니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규칙 하에서 이뤄지는 주요 활동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일 수는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 바깥에서도 사람들은 뭔가를 즐기고, 감상하고, 사용하고, 갈구한다. 그리고 디자인은 인간 본연의 활동으로서 이 모든 '비자본주의'적 상황에 적용된다.

 

비즈니스 세계의 디자인 전문가는 잠시 잊자. 좀 더 순수하게 디자인이란 활동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상품을 팔아치울 요량이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디자인을 상상할 수 있을까? 효율성과 합리성이 절대 가치가 아닌 디자인은 과연 어떤 것일까? 공장의 작업장은 모든 시설이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만 어떤 누구도 그런 재미없는 장소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에 비한다면 아이돌에 푹 빠진 십대 아이의 방은 인생의 일면을 보여주는 천국과도 같을 것이다. 두개골에 우뇌를 넣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면을 향유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보다 풍성하고 재밌는 그래픽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모순과 방황을 만끽하는 인간 본연의 면모를 반영하고자 디자이너는 이제 비즈니스 세계의 디자인 전문가의 가면을 벗고 디자인의 여성성을 추구해 봄 직하다.

 

디자이너들과 얘기하다 보면 '프로세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프로세스, 즉, 과정을 중요시하는 자세는 목표지향주의를 벗어난다는 면에서 디자인의 여성성을 발굴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흔히 내뱉는 프로세스란 결과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쉽게 말해 그 잘난 '스토리텔링'을 위해 프로세스란 말을 써먹는다는 뜻이다. 그런 식의 잔머리는 진정으로 과정을 중시하는 게 아니다. 프로세스 중심의 디자인이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안되거나, 심지어,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과정 그 자체가 디자인의 의미인 경우를 말한다. 문제 해결사인 디자인 전문가는 죽었다 깨나도 프로세스 중심의 작업을 할 수 없다.

 

여성성이 드러나는 작업의 대표적인 예로 미국식 퀼트(quilt : 조각난 천을 모아 이어붙여서 만든 이불)를 들 수 있다. 전통적인 미국식 퀼트는 재료의 수집에 의도가 없는 탓에 그 결과물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여러 사람이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협업 과정에서 생겨나는 인간적 관계가 작업에 큰 의미를 이룬다. 목표를 향하는 직선적인 과정이 아닌, 여러 정황을 포괄하여 반영하고 주변 관계에 따라 디자인의 의미마저도 달라지는 이런 식의 디자인은 산업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없었기에 지금껏 디자인 전문가가 관여해야 할 분야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그런 고정관념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SNS를 타고 울려퍼지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벌이는 멋진 활동은 디자이너가 기업의 용역 형태에서 벗어나 직접 문화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만드는 활동을 펼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껏 여성성은 분홍색, 곡선적 이미지와 같이 여성의 육체에 관한 것이거나, 기껏해야 나약하고, 머뭇거리고, 쉽게 토라지는 식의 부정적인 묘사로 점철되기 일쑤였다. 이제 왜곡된 여성성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디자인 사회는 기업 위주의 디자인 활동에 도덕적 피로를 느끼고, 학생들은 삼성에 취업하지 않아도 멋진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지난 반 세기 동안 디자이너는 국가와 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수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그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었으며, 앞으로도 수많은 디자이너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로 남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 전문가의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향한 비판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디자인이 필요한 만큼, 감성적이고 비효율적인 디자인이 필요한 곳도 넘쳐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기다. 디자인학과의 교실 문을 열어보라. 미녀 디자이너가 넘쳐난다. 그들이 디자인을 통해 펼칠 아름다운 여성성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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